세 명 모두 이런저런 이유로 가식 덩어리들입니다.
첫째는 억지 미소와 억지 사과로
둘째는 억지로 괜찮은 척, 억지로 우아한 척
셋째는 억지로 미친 척, 억지로 기억 안나는 척.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아픈 기억을 억누를 수 없기 때문일텝니다.
꽃가게를 하는 희숙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무자비한 폭력으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절대 웃어서는 안될, 발버둥치며 억울하다고 소리치고 화를 내야 하는 상황에서도
희숙은 항상 웃습니다. 그리고
"내가 잘못했다. 내가 미안하다."
를 반복합니다.
절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 속에서 그녀는 그렇게 매질을 견뎌냈을 겁니다.
그리고 가스라이팅처럼. 그 모든 일들이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을 겁니다.
하는 일 없이 돈만 뜯어가는 남편이 꽃집에 들러 희숙을 농락할 때도 그녀는 웃습니다.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고서도 그녀는 웃습니다.
딸의 끊임없는 탈선에도 그녀는 웃습니다.
그리고 자해를 합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기분이 좀 가라앉죠? 신기하게."
김 선영 배우가 연기한 희숙은 가슴 절절하게, 그리고 매번 심장을 조이게 만듭니다.
도를 아십니까. 정도의 사이비 종교인들의 모임에 가서도 마냥 웃으며 시키는대로 시간을 버티는 희숙.
어떤 일이든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고통에서 가장 빨리 벗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희숙의 불행은 더 이상 불행이라고 할 수도 없을만큼 습관이 되어 버렸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겠노 ?"
웃음이라는 가면속에 숨겨진 희숙의 진짜 마음은
누군가 나를 좀 좋아해줬으면 좋겠다
둘째 미연은 모든 환경이 몸에 맞지 않습니다. 어딘가 부자연스러워 보입니다.
대형 교회의 지휘자이고 교수의 아내이며 항상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주변을 챙기는 그녀 역시
언니와 마찬가지로 거절을 하지 못합니다.
아들의 첼로 선생님과 상담을 하는 중에 전화벨이 계속 울려도 차마 말을 끊지 못하고끊임없이 뭔가를 조르는 동생의 전화도 거절하지 못합니다.빌려간 돈을 갚지 못하고 답답하게 살아가는, 그래서 보고싶지 않은 언니지만언니를 찾아가보라는 엄마의 부탁도 거절하지 못합니다.
"아버지를 신고해 주세요."
내복만 입은채로 동생의 손을 잡고 달려가서 도움을 청했지만 어른들은 오히려 자매들을 혼냅니다
그러다 아버지 쇠고랑 차고 감옥에 들어가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느냐고.
어서 들어가서 잘못했다고 납작 엎드려서 살려달라고 빌라고.
그 자리에서 그녀의 머리 속에 박힌 것은 그들을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는 수 밖에 없다고
불행한 표정을 짓는 것은 오히려 놀림감이 된다는 교훈을 얻었을지도 모릅니다.
남편과 바람을 핀 성가대원을 처리할 때도 이불을 뒤집어 씌우고 한 방 날리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버텨보지만, 강한척 이를 악물어 보지만,
매맞는 언니를 위해 아무것도 못해준 자신의 무능함의 기억을 이겨내보려고 하지만
억눌린 분노는 항상 그녀의 마음 속에서 끓어오릅니다.
베개 두개를 차분히 쌓아놓고 머리를 처박고 소리를 지르는 미연 역의 문소리는
매순간 순간,
정말 나 이러다 죽겠다라는 표정이 살아있습니다.
고상한 척 최강인 미연의 가면 속 마음은
나도 힘들어 죽겠다, 나도 좀 살자
작가인 듯 작가 아닌 셋째 미옥은 알콜 중독입니다.
모든 기억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스스로 잊어버리기를 택했을지도 모릅니다.
술은 그 선택을 위해서 가장 협조적인 보조기구일지도.
"언니, 나는 쓰레기야."
스스로를 쓰레기라고 칭하며 하는 것 없이 일상을 보내지만
좋은 엄마, 좋은 아내로 살아가고 싶어합니다.
다만 그렇게 하는 방법을 모를뿐.
술에 취해 남편에게 하는 말이 참 인상적입니다
"나는 당신 돈 보고 결혼한거 아니야. 당신이 착해서 결혼한거야."
남편의 아들이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학부모 상담에 친엄마를 불렀지만
정말 아들의 말대로 돌+아이 기질을 가진 미연은 술을 마시고 학교로 찾아가서
나에게도 학부모 상담을 해달라고 추태를 부립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던 엄마는,
아버지의 폭행이 배다른 큰딸과 막내에게로 옮겨갔을 때 큰 힘이 되어주지 못했지만
자신은 남편의 아들에게 엄마로서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을.
그래서 화가 난 남편이 아들의 뺨을 때리자 미친 듯이 달려가 남편을 두들겨 팬 후
가족을 위한 밥상을 차리면서 드러냅니다.
술에 취해 모든 기억을 잊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미연의 가면속 마음은
나도 화목한 가정의 엄마이고 싶다
"이제는 너거 아버지 안 그란다."
는 엄마는 이제 술에 취해 힘이 빠진 아버지를 두둔하지만
"왜 어른들이 사과를 안해요?"
라며 희숙의 딸이 울부짓지만
아버지는 딸들의 터져나온 분노에도 결국 사과하지 않고
창문에 머리를 박으며 피를 흘리는 것으로 대신하지만
그 행동이
내가 너희에게 미안했다 일까요.
이제 좀 그만해라 일까요.
영화 속 모든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니 영화에서만 그렇지는 않겠죠
우리들 모두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항상 가면을 쓰고 살 수 없다는 것을 영화 속 인물들도 우리도 알고 있지요.
세 자매는 막내의 기억속 바닷가 식당을 찾아가지만
식당은 이미 폐허가 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기억 속 식당은 맛은 있지만 우울했던 과거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그리고 폐허가 된 식당은 차마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과거의 상처들이 회복될 수도 있다는 뜻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화 속 구두가 마치 그녀들의 삶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바닷가에서 함께 사진을 찍으며
"우리 이제 자주 찍자."
라는 말처럼.
아픈 기억을 떨치고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빌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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