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피아니스트와 이탈리아계 미국인 운전사, 그리고 그들의 손에 들려쥔 Green Book
그 책은 호화롭고 안락한 잠자리와 입에서 살살 녹는 고급진 음식을 소개합니다.
하지만 짓밟히고 있는 흑인들을 위한 사탕발림일 뿐이죠.
1960년대 미국은 여전히 백인들을 위한 나라입니다.
백인전용식당, 백인전용공연장, 심지어 백인전용 화장실까지. 그 안에서 흑인들은 백인의 도구일 뿐입니다.
피아노를 잘 치는 장난감, 노래는 잘 하는 인형.
1955년 앨라바마주 몽고메리, 한 버스안에서 백인에게 좌석을 양보하지 않은 흑인 여성이 경찰에 체포됩니다.
흑인들은 부당함을 주장하지만 이는 묵살됩니다.
그리고 흑인들의 참았던 분노가 터지면서 흑인들의 민권운동이 시작됩니다.
백인 전용 식당에서 시작된 sit-in 운동. 그저 흑인들은 그 자리에 앉았을 뿐이지만
백인들은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릅니다.
미국은 여전히 백인들을 위한 나라였습니다.
3살때부터 사람들 앞에서 피아노를 쳤던 셜리는 남부지방 투어를 결정합니다.
그나마 차별이 덜 한 북부에서만 공연을 해도 엄청난 부를 얻을 수 있었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습니다.캔터키 주를 포함한 남부지방 공연은 신체에 위협이 가해질 수도 있는 무모함이었습니다.셜리는 투어를 위해 운전사, 토니를 고용합니다.평생을 뉴욕의 클럽에서 입담과 주먹으로 살아온 토니는 셜리에게 딱 필요한 존재였습니다.
이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 같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외톨이 셜리.팍팍한 현실 속에서 힘겨운 돈벌이지만 그래도 가족의 사랑으로 버티는 토니의 조화는 의외로 안성맞춤입니다.완전히 쿵짝이 잘 맞는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를 이해하게 됩니다.
흑인이기 때문에, 흑인이 아니라면 겪지 않아도 될 일을 매번 당하고 사는 셜리를 보며
처음에는 흑인을 무시했었던 토니도 점점 편견을 떨쳐냅니다
어느날 백인전용 식당에서 공연을 앞둔 셜리는 창고와 같은 대기실로 안내가 되고
식당에서의 식사마저 거부당하게 됩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셜리의 피아노 연주일 뿐. 셜리는 그들에게 여전히 배척의 대상이었죠.
이대로 고상하게 무대에 오르느냐. 아니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느냐.
셜리는 무대를 버리고 토니와 식당을 나와 버립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흑인전용 클럽으로 들어가서
그렇게 원하던 쇼팽의 피아노곡을 사람들 앞에서 연주합니다.
"충분히 백인답지도 않고, 충분히 흑인답지도 않고, 충분히 남자답지도 않다면 그럼 난 뭐죠?
멸시받는 흑인들 속에서 셜리는 잘난척 하는 흑인이고
멸시하는 백인들 속에서 셜리는 갖고 놀기 좋은 흑인일 뿐인 것입니다.
스스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서 흑인처럼 생활하기를 거부했던 셜리가
토니처럼 캔터키 치킨을 손으로 뜯으며 함박웃음을 짓는 장면은 무척이나 감동이지만
또 무척이나 가슴 아픕니다.
흑인차별을 반대하는 흑인과 백인 청년들은 함께 버스를 타고 남부지역을 다니는 프리덤 라이더스 운동은
토니와 셜리가 함께 가족이 기다리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밤새 쉬지 않고 서로 번갈아 가며 눈길을 달리는 모습과 묘하게 매치됩니다.
그리고 친절하게 뒷바퀴 타이어에 문제가 있음을 알려주고 도와주는 경찰은
없는 죄도 뒤집어 씌우는 남부 지방 경찰과 대비되죠.
물론 다분히 영화를 위한 선과 악이 억지스럽게 배치되어 있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공감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에게 무슨 급이 있겠습니까
그저 살아가는 생활방식이 다를 뿐인것을요
그냥 태어나보니 여기 이곳이 내 자리인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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