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 리뷰

누가 만들어 달라고 했나요-기예르모 델토로의 피노키오

by 미주양 2023. 1. 14.
728x90
반응형
SMALL

SMALL

피노키오는 짱구같은 녀석입니다.

하지 말라면 하고, 하라는 건 괜히 딴지 거는. 

흔들흔들 건들건들 걸으면서 피노키오는 사고만 치다가 결국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깨닫게 되는.

뭐 그런 내용이었던가요.

하여간 어린시절 피노키오가 주는 교훈은 

"거짓말 하지마!! 부모님 말씀 잘 들어!! 네가 잘못하면 부모님만 고생이야."

 

기예르모 델토로는 멕시코 영화감독입니다. 원래가 특수촬영과 특수분장 전문가였다고 합니다. 

인형이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의 제작과정을 보면서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한 여러 사람들의 수고와 감독의 멋진 연출 솜씨에 탄복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배경은 1차 세계대전.

걸핏하면 하늘위로 전투기들이 날아다니고 언제 폭탄이 떨어질지 모르는 그런 위기 상황속에서도

사람들의 일상은 아주 평범합니다.

국가 지도자들의 자존심을 앞세운 싸움에 국민들만 하루하루 두려움에 떨었던 전쟁이었지만

등장 인물들이 모두 목각인형이기 때문이었을까.

평화로워 보이는 시골 마을에서 피노키오는 태어납니다.

피노키오의 탄생 과정은 어쩌다보니라기 보다는 한 인간의 욕심에서 비롯됩니다.

 

 

아들 카를로와 함께 성당 보수작업을 하러 갔던 제페토는 뜻하지 않은 폭발물 추락 사고(?)를 당한후

죽기 직전까지 아들의 손에 쥐어져있던 솔방울을 마당에 던져 버립니다.

아들을 잃은 슬픔을 견디다 못한 제페토는 어느 비오는 날, 소나부를 베어 피노키오를 만든 후 

술에 취해 잠이 들고 

그 때 숲의 전령이 가여운 제페토를 위해 목각 인형에 혼령을 불어넣어줍니다.

그렇게 피노키오는 탄생합니다.

 

피노키오의 탄생 목적.

생명의 탄생에 목적이 있다는 것부터 좀 서글펐습니다.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를 위로하기 위한 목적이라니.

피노키오를 처음 만난 제페토는 물론 처음에는 기절 초풍을 하지만

피노키오가 카를로를 대신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아들처럼 피노키오를 받아들입니다.

아.들.처.럼.

 

"너는 왜 카를로처럼 하지 못하니?"

카를로처럼 되지 못하는 피노키오는 착한 아이가 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카를로와 똑같은 존재는 이 세상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개개인이 다 의미있고 특별하다고 하는 이유는 나와 같은 사람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내 앞에 앉아있는 그 사람을 제3자와 비교하면서 탓합니다.

 

"당신은 왜 누구누구처럼 못해?"

"너는 왜 누구누구처럼 못하니? 엄마 아빠가 너한테 못해주는게 뭐니? "

 

피노키오의 입장에서는 억울할 만도 합니다.

만들어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더구나 사람도 아닌데 카를로와 같아지라는 압박감이라니.

무엇보다 가장 부당한 것은 등장인물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노키오만 거짓말을 할 때 코를 커지는 핸디캡을 안겨주어서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게 만든 것이죠.

나라면 이거 억울해서 못살겠다며 땅을 칠 판인데.

피노키오는 아버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려다 오히려 궁지에 빠집니다.

 

 

 

어린 시절의 피노키오는 세상의 질서에 결국 순응하였던 것 같습니다.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나는 피노키오 이야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기예르모의 피노키오는 달랐습니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커지는 피노키오 덕분에 모두들 포악한 고래의 뱃속에서 살아 나올 수 있기 때문이죠.

거짓말이 나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들이 또는 기성 세대가 또는 사회가 만들어 놓은 모든 규율과 범례들이 

무조건 옳지만은 않다는 것을.

때로는 반항하고 기어올라서 뒤집어 버려도 좋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서 몇 번이나 환생을 거듭할 수 있음에도 포기해버리는 피노키오의 선택이.

아쉬운 면도 없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영원히 살 수 있는 선택을 포기하였으므로. 여전히 나에게는 죽음이 두렵기 때문에.

하지만 영원한 삶이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상상을 하면서.

모든 생명은 끝이 있으므로 현재를 더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그래서 더 아름다워질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부족함이 없는 인생은 거들먹거릴 수는 있지만 겸손함이라는 고귀한 감정을 절대 가질 수 없으니까요

 

 

마음이 천국과 지옥을 만들어낸다고 하죠.

과거에 집착하고. 반드시.라는 단어에 매달리다보면

흘러가고 있는 현재를 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나뭇잎이 떨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만약 나무가 그 잎을 떨어뜨리지 않게 안간힘을 쓴다면

에너지를 모두 그곳에 집중시킨다면.

나무는 새로운 잎을 만날 수 없을텝니다.

 

나에게 피노키오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같을 수는 없으며 지나간 사람과의 인연에 아쉬워하지 말라는.

그리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또 지금 내가 할 수 있는만큼 사랑하라는.

뭐.그런.말도 안되는.그렇지만 내게는.참 감동적인. 그런 이야기.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