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계획없이 떠날때 설레인다.
오사카를 갈 때는 심지어 시간당 계획을 세웠다.
알뜰살뜰 우리 언니는 간 김에 오사카를 깡그리 보고 싶어했다.
나는 그 계획을 세웠고 몇 번의 검토끝에 오케이^^ 싸인을 받았다.
그리고. 그게 나와는 너무 맞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도 나름 재미있었다.
매일이 무료했다.
마치 발에 바퀴라도 달린 것처럼 매주말은 돌아 다녀야 했다.
가능하면 멀고 먼 곳으로 다녀와야 직성이 풀렸다.
그래서 또 월요일을 늘 피곤했다.
그래도 그 맛에 또 일주일을 버텼다.
코로나가 나를 묶어놓기 전까지.
나는 장거리 여행을 즐겼다.
아마도 연휴가 끼인 금요일었던 것 같다.
갑자기 일정이 하나 사라졌고 나는 자유의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서둘러 검색을 해야했다.
숙소가 남아있을 리가 없었다.
그냥 잘 곳만 있다면 나는 그곳으로 가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리고 그때야말로 나는 하늘의 도움을 받았음에 틀림없다.
다행히도 다른 사람이 예약을 취소하였다.
다행히도 고창이라는 먼 곳이었다.
다행히도 청보리 축제라는 것을 하는 주였다.
어떻게 이렇게 딱 맞아떨어질 수 있지?
새벽 일찍 간단한 짐을 들고 우리는 달렸다.
몇 시간을 달렸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다만 우리는 아주 즐거웠고 설레었고 마음이 가벼웠다.
축제가 시작하기도 전에 우리는 학원농장에 도착했다.
그럼에도 훨씬 더 부지런한 사람들이 많았다.
주차장은 빼곡히 차고 있는 중이었다.
이른 아침 바람이 쌀쌀했다.
하지만 하늘은 높고 맑았으며 청보리의 물결은 흥에 겨웠다.
길을 따라 청보리밭을 지났다. 향이 신선했다.
군데군데 세워놓은 바람개비들은 바람과 함께 춤을 추듯 원을 그렸다
바람개비의 팔랑거림이 가벼웠다
청보리밭에서는 우울할 일이 없었다
아니 우울함과 청보리는 어울리지 않았다
"된장찌개에 쓱쓱 비벼먹는 보리밥이 이 보리야?"
"아닐걸. 보리는 보리고 청보리는 청보리겠지. 다를거야."
같든 다르든 상관이 없었다.
그냥 나는 청보리를 좋아하기로 마음 먹었다.
아니 그냥 보리라도 무척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래오래 걸어도 청보리밭은 끝날 줄을 몰랐다
길고 긴 길이었고 끝없이 아름다운 길이었다.
사람들이 점점 몰려들기 시작했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마음에 들었다.
"가씨나야, 뭐하노. 빨리 안오고"
뭐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아저씨 한 분이 엉덩이를 흔들며 걷고 있는 웰시코기를 혼내고 있었다.
정말 귀여운 녀석이었다.
아마도 아저씨는 자신의 반려견을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듯했다.
사람들이 눈길이 모이면 모일수록 아저씨는 흥에 겨워 보였다.
그리고 뒤뚱대는 웰시코기는 사람들의 손길을 즐겼다.
매년 고창 보리밭 축제를 생각했다.
하지만 매년 이렇게 저렇게 미뤄졌다.
그리고 2023년. 5월.
이번에야말로 꼭 다시 찾아가리라. 마음은 먹지만.
그때만큼 가슴 벅찬 아름다움을. 그리고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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